<Cherry Bomb> 티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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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는 현재 SM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인 만큼 NCT의 작업물에서는SM이 지난 시간 동안 시도해왔던 다양한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샤이니와 f(x) 같이 마이너하지만 힙하고, 레드벨벳 같이 가볍기도 하며 EXO의 큰 스케일을 구현하기도 하는 NCT 127의 곡들은 오랫동안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발표된 곡들을 들어온 팬들에게는 익숙하고 재미있는 곡일 것이다. 그들은 랩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만 빼면 SM 선배 그룹들의 전략을 응용한 작업물을 선보이며 SM의 오랜 팬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팬덤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NCT 127은 지난 22일 처음으로 음악 순위 방송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 앨범 초동 판매량은 5만 6천장. 지금까지의 활동에서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이다. 음원 성적도 전작들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리지는 않았지만 NCT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올드스쿨 힙합 장르를 트렌디하고 키치하게 풀어냈고 이전보다 태용과 마크의 랩 파트가 압도적으로 늘어난 ‘Cherry Bomb’은 SMP에 가까웠던 무한적아 보다는 좀 더 소방차의 정서로 회귀한 듯 하다. 하지만 무한적아의 큰 스케일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풍부한 베이스와 드럼, 신시사이저가 구조적으로 쌓여있고 곡의 재생시간은 약 4분에 육박한다. 말 그대로 무한적아 사이즈의 소방차를 만들어낸 느낌이다. 90년대의 키치 스타일과 8비트 게임을 연상시키는 도트 이미지, 스트리트 아트적 캐릭터 등 비주얼 컨셉도 90년대 초반의 레트로를 따르고 있다. Cherry Bomb은 SM이 그 동안 선보였던 전통적인 작업 스타일과 90년대 복고 트렌드, 그리고 마크와 태용이라는 이전에 회사에 없던 래퍼 자원과 같은 요소들을 콜라주와 같이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다. 재현과 유타 같은 멤버들과 수록곡 'Whiplash'가 담고 있는 섹슈얼한 코드 역시 눈에 띈다. Cherry Bomb은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작업물임에는 틀림없다.

NCT 127 공식 홈페이지
NCT 127 공식 홈페이지

하지만 몇 가지의 아쉬운 점 역시 눈에 띈다. 스케일은 크지만 태용과 마크의 랩 파트와 보컬 파트, 퍼포먼스를 위한 브릿지 파트는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그렇다고 소녀시대의 ‘I GOT A BOY’처럼 극적이지도 않다. 5세대 이전의 콘솔 게임을 연상시키는 도트 아트와 8비트의 사운드, 90년대 윈도우 인터페이스를 본 따 만들어진 공식 홈페이지의 아트워크들은 올드 스쿨 힙합의 레트로보다는 베이퍼웨이브 문화에 가까워, 서로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알기 힘들다.

사실 주목해야하는 부분은 바로 이 베이퍼웨이브적 이미지들에 있는데, Cherry Bomb은 SM이 만들어온 것들과 SM에게는 새로운 자원인 랩 뿐 아니라 인터넷 어디에선가 유행하고 있는 이미지와 밈, 사운드를 이리저리 끌어다 하나로 엮어 풀어내려 한 것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의 샤이니와 f(x)는 주로 음악적인 실험을 해왔지만, Cherry Bomb은 그것보다 더 나아가 소모적이고 일시적인 SNS의 환경 내에서만 그 의미를 가지던 하위 문화의 요소를 전반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이러한 하위 문화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어디선가 이미 본 것 같은 진부함을 줄 수 있고, 익숙하지 않은 팬들에게는 대중적이지 않은 마이너한 것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많은 그룹들이 데뷔 후 안정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지기까지 많은 것을 시도하며 과도기를 겪는다. 오히려 세븐틴과 마마무와 같이 데뷔부터 확실한 컨셉과 이미지, 음악을 가지고 활동하는 그룹이 독특한 경우에 속한다. 그런 와중에 NCT는 무한 확장과 개방을 모토로 하고 있는 만큼 그들이 어떤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모순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떤 하나의 강력한 이미지와 정체성을 가지고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대신 차근차근 SM의, 그리고 서브컬쳐를 지속적으로 향유해오던 코어 팬층을 모으는 것이 더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수 있다. 실제로 Cherry Bomb은 지금까지의 NCT 127 활동 중 가장 긍정적인 결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무한의 확장성과 개방성을 표출해내는 음악과 비주얼의 출처가 SM의 과거 작업물들과 인터넷 하위문화이고, 과도기적 시도의 결과물이 그 두 흐름의 요소들을 콜라주처럼 산발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그친다면 NCT의 정체성은 그저 '과도기'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역대급"에는 지금 이상의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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