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좋아하던 사람이 여행 에세이를 쓰고, 요리를 조금 해보더니 어느 새 레시피북을 내는 사람이 드물지 않은 세상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글을 읽는 사람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몇 년 전에는 힐링 도서와 인문 도서가 유래없이 유행하더니 이제 '읽을만큼 읽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작가를 자처하는 시대다.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불쌍히 여긴 세종대왕이 지금의 광경을 보게 된다면 몹시 흐뭇해할지도 모르겠다. 올 해 3월 이후 출간된 책만 30만권이 넘어가고, 인터넷에서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까지 같이 계산한다면 셀 수 조차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독서습관을 비롯한 자기 계발서가 유행이었다. 독서를 강조하던 사회가 눈 깜짝할 사이에 글을 쓰는 사람을 대거 양산한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왜 이렇게 메이저한 라이프 스타일이 된 것일까?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마케팅 서적에서는 한 동안 스토리텔링이 붐이었다. 어느 회사의 기획서든 스토리텔링에 대한 기획안을 넣지 않으면 까이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 경향은 취업, 대입에 영향을 끼쳤고 졸지에 국민의 상당수가 자의로든 타의로든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글쓰기는 이제 영혼을 채워주는 마음의 양식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콘텐츠를 스토리로 만들고 남들에게 알리는 셀프 마케팅의 수단이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취업 카페에서는 매일같이 자기 소개서 쓰는 법에 대한 지식이 오고간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마치 한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여야 자신을 팔고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았고, 살고 있다.


만약 당신의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그 누구도 사지 않는다.
만약 당신의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그 누구도 사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자신에 대해서 글쓰기를 강요받은 사람들은 이제 고민을 해결해 줄 힐링 책이나 인문 서적을 점점 원하지 않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책을 들여다본다고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수 년에 걸쳐 특정 라이프 스타일이 강요된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서 "제가 원하는건 이겁니다. 존중해주시죠?"를 글로 풀어낼 능력을 얻게 되었다. 한 때 인터넷의 권력자로 떠올랐던 파워 블로거들의 위치가 위태로워진 것도 이 때 즈음이다. 한 때 전문 블로그는 전문가나, 그에 준하는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나 만드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제는 맛집이나 여행, 사진, 패션 블로그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아졌고, 글의 구조나 문법, 목적성은 그 권위를 잃었다. SNS 일기의 단골 소재이던 감성글과 우울함도 사람들 앞에서 '까발리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됬으니 무슨 글이든 못 쓰겠냐는 욕망이 따라온 것 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세상은 대(大) 작가 시대다. 그 시대의 수혜자인 나는 그저 마음대로 글을 쓰고 팔 수 있는 자유를 즐기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할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권위도 구성도 존재하지 않는 글을 기꺼이 즐겨주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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