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평균 나이 15세인 걸그룹이 논란 속에서 데뷔했었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그룹의 이름은 ‘GP Basic’이었고 멤버 대부분이 초등학생과 중학생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시류를 오독한 탓이었는지 그 당시는 2NE1과 포미닛,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같이 쎈 ‘언니들’을 표방한 그룹들이 대세였고 GP 베이직 역시 그러한 컨셉을 따랐으나 컨셉과 멤버들의 연령대 사이의 괴리로 인해 다소간의 논란과 함께 한국 아이돌사에 변변찮은 기록 하나 남겨보지 못하고 쏟아지는 아이돌 그룹의 홍수 속에 묻히게 된다.


데뷔 당시의 GP Basic
데뷔 당시의 GP Basic

여담으로, 놀랍게도 이 그룹은 아직도 해체하지 않았으며 2014년까지 꾸준히 앨범을 발매했고

최근에는 한 MMO RPG 게임의 홍보모델로 활동 중이다.

데뷔 당시 가장 어렸던 전 멤버 제이니는 올해 ‘언프리티 랩스타 3’에 출연한 바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6년 후, 아이돌 명가인 SM에서 평균 나이 15.6세의 NCT Dream을 데뷔시켰다. 그들에 대한 반응은 6년 전 GP 베이직을 대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포털 검색창에 엔시티 드림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나이’가 완성되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어린 연령대는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SM 아이돌을 오랫동안 좋아해온 팬들을 바탕으로 한 팬층이 있다. 호버보드를 이용한 안무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f(x)의 첫사랑니(Rum Pum Pum Pum)을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비유를 이용한 가사 역시 SM이 왜 아이돌 명가로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그때도 지금도 그들의 어린 나이를 이유로 미성년자의 상품화를 지적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많은 대중들, 특히 아이돌을 지속적으로 소비해온 팬들이 그들을 각각 대하는 온도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6년 사이에 거대한 인식의 변화라도 일어난 것일까? NCT의 음악성이 훌륭하기 때문에? 아니면 그저 많은 팬을 보유한 SM의 신인이라서? 우리는 이 그룹의 선방적인 데뷔에 대해 조금 더 서사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 아이돌 팬덤을 떠도는 키워드인 ‘무해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도미노피자 광고 속 송중기와 박보검의 모습은 전통적인 강한 남자와 거리가 멀다.
도미노피자 광고 속 송중기와 박보검의 모습은 전통적인 강한 남자와 거리가 멀다.


최근, 무해함은 스타들이 팬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요구되는 사항이다. 순한 이미지의 이종석, 송중기, 박보검 등이 인기를 인기를 얻고 있고 배우 마동석의 마초적이고 무서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등 귀여운 성격으로 ‘마블리’라는 별명을 얻는 등 여성에게 해코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러나 전통적인 기사도나 마초이즘과는 다른 성격의 무해함은 ‘내 최애(가장 사랑하는 연예인, 캐릭터 등)’를 다른 사람들에게 영업하기 위한 마케팅 포인트이기도 하다. 남성들의 ‘강함’은 여성들의 ‘강함’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오기에 여성들은 현실에서 겪는 여성혐오와 폭력들과 반대되는, 순하고 무해한 이미지에 대한 니즈를 가지고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무해함에 대한 수요에 깔려있다.


아이돌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여성혐오적 메시지를 담은 방탄소년단의 일부 곡들이 논란이 되고 팬들이 그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하는 현상이 일어났고 블락비 멤버들의 자작곡에 담긴 가사들이 ‘블락비 여성혐오 증거’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고 있으며 남자 아이돌의 인터뷰 내용에 여성혐오적 발언이 있는지 살피는 것은 이전보다 찾아보기 쉬운 광경이다. 그로 인해 이전부터 강한 남성상을 거부하고 여성 혐오 논란에 대해 비교적 순응적으로 받아들인 샤이니가 무해함의 아이콘과 같이 떠오르기도 한다.

스텔라 미니앨범의 티저 사진 속 모습은 어떠한 사고나 욕망도 읽히지 않는 나른하고 멍한 표정으로 감상자를 응시하고 있다.
스텔라 미니앨범의 티저 사진 속 모습은 어떠한 사고나 욕망도 읽히지 않는 나른하고 멍한 표정으로 감상자를 응시하고 있다.


한편 남성 연예인들에게 이 무해함이 비교적 최근에 요구되기 시작한 것과는 달리, 여성 연예인들에게는 무해함이라는 덕목이 강하게 그리고 기형적인 형태로 요구되어왔다. 2005년도 BoA의 Girls On Top이나 이효리의 강하고 털털한 이미지를 시작으로 2NE1, 포미닛, 브아걸 등 강한 여성상이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잠시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점차 팜므파탈적 섹시함으로, 거기에서 스포티한 섹스어필, 그리고 순수하고 수동적이며 미성년자(특히 여고생)에 가까운 이미지의 여성상으로 점차 회귀되어 조금은 다른 이미지의 무해함. 즉 ‘이것저것 안 따지고 나랑 만나줄 것 같은 여자’의 이미지로 이르렀다. 현대의 남성들에게 여성이, 특히 미성년자 여성이 소비될 수 있는 포인트는 바로 이 무해함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GP 베이직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들은 단지 너무 어리기 때문에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남성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성년자의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았기에 외면되었다고 봐야 할까? 만약 그들이 순수한 사랑을 외치는 컨셉으로 최근에 데뷔한 걸그룹이었다면, 그 때에도 컨셉과는 상관없이 평균 나이 15세라는 부분이 2010년과 똑같은 강도로 문제시 될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Chewing Gum의 비디오 속 멤버들은 김나지움적 공간에 놓인 유약하고 '때묻지 않은' 소년들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그려낸다.
Chewing Gum의 비디오 속 멤버들은 김나지움적 공간에 놓인 유약하고 '때묻지 않은' 소년들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그려낸다.


NCT Dream의 음악은 최근 논란이 되었던 블락비나 방탄소년단과는 거리가 있으며, 형제그룹인 NCT U나 NCT 127의 그것과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최근의 남자 아이돌들이 누가 더 '쎄' 보이는지, 누가 더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지를 경쟁하는 것 같은 구도가 되가는 것과 달리 NCT Dream은 대부분의 멤버가 미성의 목소리로 웃으며 풍선을 불어보라 권유할 뿐이다. 물론 폭력성과 남성성을 배제한 남자 아이돌이나 그러한 컨셉의 앨범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같은 회사의 선배 그룹인 샤이니의 데뷔곡인 <누난 너무 예뻐>는 지금까지도 무해하고 순수한 남자 아이돌의 테마곡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지역성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NCT의 시스템 속에서 미성년자 멤버들로 구성된 그룹을, 그것도 멤버들의 어린 나이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며 홍보한 것은 단지 과거의 흥행공식을 답습했다고만 결론짓기에는 무리한 감이 있다. 이 그룹의 등장 배경에는 무해하고 순수한 남자아이를 소비하고 싶어하는 팬(소비자)들의 욕망이 일정 부분 투영되어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함께 이루어져야한다.


남성 연예인에게 요구되는 무해함은 여성에게 요구되는 무해함보다 비교적 덜 강하게 적용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무해한 이미지의 배우들이 주목을 받는 동시에, 무해하지 않은 남성 이미지 역시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상남자’, ‘아저씨’ 등등의 포장지로 대충 덮어진 채로. 어쩌면 NCT Dream에 대한 대중들의 수요는 이러한 현실에서 비롯된 어떠한 기대감을 그 근원으로 두고 있을지 모르겠다. 남자들의 세계에 때가 묻어 여성혐오적 세계관에 길들여진 성인 남자 아이돌보다는 아직 순수한 어린 남자 아이돌이 ‘덜 유해할 것’이라는 씁쓸한 기대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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