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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의 호러 판타지


※ 12월 28일 브런치에 개제한 리뷰입니다.


지난해 레드벨벳은 [Perfect Velvet]을 발표하며, 고혹적이면서도 서늘하고 그로테스크한 새로운 '벨벳' 컨셉을 구축했다. '피카부 (Peek-A-Boo)'는 그동안 걸 그룹을 포함해 K-POP 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이미지와 사운드를 구축한 중요한 전환점이 된 곡이었다. 2018년의 레드벨벳은 그들의 새로운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방향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올여름 발표한 [Summer Magic]이 그들의 새로운 레드 컨셉인 여름을 이어가는 앨범이었다면, [RBB]는 '피카부'에서 보여줬던 미국식 호러 컨셉을 이어가는 앨범이다. 아메리칸 B급 슬래셔 무비와 팜 파탈이 있던 자리에 '크고 나쁜 늑대'를 불러온 채로.


타이틀 곡 'RBB (Really Bad Boy)'는 전작의 '피카부 (Peek-A-Boo)'보다 훨씬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태도의를 가지고 있다. 나쁜 매력의 남자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비교적 전통적인 서사의 가사와 아이린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는 변덕스럽고 현실적인 사랑에 대해 노래했던 지난 곡에 비해 '알기 쉽다'는 인상을 준다. 불안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던 플럭신스 사운드 대신 경쾌한 브라스 소스와 고음의 애드리브로 채워진 곡은 시종일관 키치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유지하며 진행된다. 뮤직비디오 내내 등장하는, 이솝 우화의 '크고 나쁜 늑대'를 연상하는 늑대 캐릭터는 아메리칸 레트로 스타일의 세트장 안에서 7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빅풋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그림자의 형태로 다가오는 씬으로 유명한 <노스페라투>나,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작인 <샤이닝>을 오마주한 씬 등은 레트로한 사운드의 곡과 뒤섞이며 할리우드 호러 영화에 대한 오마주와 암시를 강하게 보여준다.

f(x)와 샤이니의 곡들을 연상시키는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사운드와 풍부한 보컬의 조화가 돋보이는 2번 트랙 'Butterflies'나, 레드벨벳 특유의 R&B 스펙트럼을 퓨처 베이스로 확장시킨 'So Good'과 같은 수록곡들이 갑작스럽게 분위기를 밝게 전환하는 것은 조금은 의문스러운 트랙 배치이다. 그렇지만 펑키하고 키치한 레트로 어반 곡인 '멋있게(Sassy Me)'와 올드 스쿨 스타일의 힙합 댄스 곡인 'Taste'가 지나며 점점 아메리칸 레트로라는 기존의 태도에 가까워지만 타이틀곡 'RBB'의 영어 버전이 마지막에 튀어나오며 앨범의 컨셉을 완전히 완성하도록 한다. 갑작스레 사랑에 빠져드는 감정에 대해 노래하는 2번 트랙은 사실상 이 앨범의 스토리의 시작이다. 3, 4, 5번 트랙을 지나며 화자는 연애 관계에서의 새로운 자극을 원하게 되고, 6번 트랙에서 '크고 나쁜 늑대'는 그 본 모습을 드러낸다. 1번 트랙은 사실상 이 모든 스토리의 티저인 셈이다. 각 곡들의 완성도 자체도 SM 엔터테인먼트가 늘 그래왔듯 수준 이상의 프로덕션이 돋보이지만, 트랙 배치와 콘셉트에 따른 레트로 사운드의 다양한 사용으로 앨범 전체에 유기성을 불어넣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완성했다.

의미심장하고 날카로운 태도와 비디오의 '피카부 (Peek-A-Boo)'를 좋아했던 팬이라면, 이번 앨범에서의 레드벨벳에서 비교적 아쉬움을 느낄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레드벨벳은 어떤 아이돌 그룹도 향하지 않았던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발랄하고 청순하거나, 고혹적이고 섹시해야 했던 걸 그룹의 세계관에 '호러'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불러온 레드벨벳은 크고 나쁜 늑대에게 쫓기다가도 반대로 남자들을 사냥해 박제해버리기도 한다. 가볍고 경쾌한 플럭 신스 사운드를 긴장 유발의 장치로 이용하기도, 혹은 의도치 않은 포인트에서 사운드 소스로 비명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들에 의해 우리는 '피카부 (Peek-A-Boo)'를 지나 'RBB'로 붙잡혀왔다. 이후에 또 어떤 호러 판타지가 도사리고 있을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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