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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엠버의 해.

엠버의 지난 2년이 만들어낸 성취에 대해.

※ 12월 12일 브런치에 개제한 칼럼입니다.

2018년의 엠버는 바빴다. 1월부터 지금까지 세 개의 싱글을 발표하고, 4월에는 믹스테이프 [ROGUE ROUGE]를 발표했다. 100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여러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올 한 해를 통틀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K-POP 아티스트 중 하나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원래도 그는 이 산업에서 유니크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그렇지만 이번 1년 동안의 활동을 통해 엠버는 여성 아티스트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K-POP 산업 내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엠버가 지난 2016년 발표한 세 개의 싱글 'Borders', 'On My Own', 'Need To Feel Needed'는 엠버가 준수한 완성도의 팝 곡을 만들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임을 증명했다. 또한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해온 엠버라는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메세지와 감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를 제공했다. 엠버는 '강한 여성'이라는 얼핏 그럴싸해 보이는 상업적인 타이틀과 캐릭터를 거부하고 그는 자신에게는 나약한 면과 두려움과 같은 감정이 있고,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중이라는 것을 호소에 가깝게 노래했고, 특히 'Need To Feel Needed'는 그러한 경향이 가장 두드러진 곡이었다.

[ROGUE ROUGE]는 그 후속작이자 본편이다. 이 믹스테이프에서도 'On My Own'을 함께했던 프로듀서인 Gen Neo와 작업했고, 신스 팝과 어쿠스틱 발라드와 같이 익숙하고 장르와 감성적이고 세련된 사운드를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주목할만한 차이가 있다면 가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엠버가 오랫동안 사용해온 랩을 과감하게 지워냈다는 것이다. -머리가 짧고, 편한 옷을 입는 여성인 그에게 강해 보이는 툴인 '랩'을 요구했던 SM 혹은 K-POP 업계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났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 이번 믹스테이프에서 엠버는 이전 곡들에서 표현된 자신의 고독과 감정적인 방황을 적극적으로 극복한다. 가장 첫 번째로 공개한 곡인 'Closed Doors'는 그러한 메세지가 잘 담긴 곡이다. 'On My Own'과 'Need To Feel Needed'에서 관계에 대해 의존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하던 엠버는 "Nobody has to know / What's behind these closed doors"라며 스스로의 주체적인 정체성을 강조하고, 'Get Over It'에서는 사람들은 서로 의견을 가지고 있고 결국 그 의견 차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니 그냥 넘겨버리자며 독립된 개인들 간의 연대를 독려한다. 프로그레시브 트랜스 곡인 'High Hopes'에서는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에 집중할 것을 선언한다. 세 개의 곡에서 엠버는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삶을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으로 회복할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그 임무를 수행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관계와 사랑에 대한 그의 생각 역시 많은 변화를 보였다. 'Three Million Years'는 'Borders'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곡이다. 'Borders' 뮤직비디오에서 엠버는 사각형의 경계 안에서 "한계를 넘어"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영상의 마지막까지 그는 그 경계 안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그렇지만 이 두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엠버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교감하며 주저 없이 달린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엠버는 두 곡에 대해 자신의 삶과 세상을 사랑할 노래가 필요했었다며 설명하기도 했다. 'Lifeline'과 'Right Now' 역시 동일한 주제의 곡이다. 엠버는 믹스테이프의 메세지에 대해 "사랑은 그냥 사랑이며, 게이이든 바이이든 헤테로이든 상관없는 것이다."라며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연대의 약속했다. [ROGUE ROUGE]는, 엠버라는 업계의 주류에서 벗어난 여성 아티스트가 자신의 정체성과 삶을 인정하고 사랑할 것이라는 선언이자 자기 확인이기도 하다.

[ROGUE ROUGE]까지의 엠버의 음악이 화자와 청자가 명확히 나누어지지 않고 교집합을 그리고 있었던 반면, 하반기에 SM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발표한 싱글 [WHITE NOISE+LOST AT SEA]와 [Countdown+Beautiful]은 적극적으로 청자의 임파워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Whtie Noise'의 몽환적인 멜로디와 거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High Hopes'의 진취적이고 강한 분위기와 메세지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의 안정적인 위치와 태도를 찾은 엠버는 길을 잃고 헤매는 청자, 팬, LGBTQ, 그리고 여성들을 대상으로 "Don't lose your way home"이라며 '집'으로 상징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잊지 말 것을 강조한다. 런던 노이즈와 함께한 경쾌하고 달려나가는 듯한 진행의 'Countdown'이 끝나면 흘러나오는 'Beautiful'에서는 "I'm just happy, haapy to be myself"를 반복하며 스스로의 삶과 정체성을 받아들인 이후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2018년 발표한 곡들 중 유일하게 랩을 넣은 곡이기도 한데, 이 파트에서 역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머무르지 않을 것이며 싸워나갈 거라고 이야기한다.

2018년의 엠버는 -혹은 2016년부터의 엠버는- 자신의 삶과 주변의 관계, 그리고 K-POP 산업과 세상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서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것임을 다짐하고 선언하고 수행했다. 그러한 과정을 유튜브로, 그리고 자신의 제1 사용언어이자 공용어인 영어로 표현함으로써 점차 K-POP 산업 내에서의 그의 위치와 위상 역시 공고해졌다. 비공식적으로 영어권 LGBTQ 커뮤니티에서 하나의 콘텐츠로 소비되던 K-POP에서 적극적으로 그들과의 연대를 약속한 아티스트는 몇 되지 않는다. 그것을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형태로 표현한 이는 더욱 드물다. 여성들의 '여성성' 비수행과 탈코르셋에 대한 실천과 담론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한국에서도 그의 존재는 특별하다. 사회적으로 고정되고 강요된 젠더 역할을 다른 업계의 여성들보다 더욱 많이 수행해야 하는 쇼 비즈니스 업계, 그것도 아이돌 씬에서 엠버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려 고군분투했다. 온전히 'Just be Me'를 이뤄내기까지 그는 많은 조롱과 뒤틀린 대상화, 가십에 기반한 억측, 그리고 모험을 시도하지 않으려는 회사의 침묵과 홀로 싸워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K-POP 팬들과 미디어는 엠버의 행보에 주목해야 한다. 그가 2018년에 일궈낸 성취들은 그가 '미국인 아이돌' 혹은 '아시아계 미국인', '작은 나라의 아티스트', '걸 그룹', '여성스럽지 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과소평가되거나 무시되거나 혹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담론에서 필요에 의해서만 뭉뚱그려진 형태로 소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엠버는 유능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디렉터이고, 아이돌 씬에서 f(x)라는 음악적으로 중요한 그룹의 멤버이며, 한국 대중음악계 내에서 어떤 아티스트도 가지 않았던 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는 개척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티스트의 작업물들은 너무나 소극적으로만 이야기되었다.  K-POP 씬에서 가장 아이코닉하고 중요한 아티스트 중 하나로 자리잡은 이 아티스트의 앞으로의 행보가 과소평가되거나 무시되지 않기 위해서는, 엠버 그 자신이 우리에게 건낸 연대의 약속을 우리 역시 그에게 내밀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엠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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