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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 음악적 달성의 그 다음

※ 12월 9일 브런치에 개제한 리뷰입니다. 


지금의 EXO와 SM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완성도를 가진 앨범이다. 그 동안 SM은 지금의 케이팝 씬에서 '피지컬 앨범'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 회사 중 하나였다. 많은 경쟁팀과 회사들이 음악 트렌드에 맞춰 싱글과 EP를 발 빠르게 발매하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오랫동안 각 아티스트들의 음악적 정체성과 앨범의 완성도를 갖추는 전통적인 목적을 이루는 것에 집중해왔다. EXO는 이러한 작업 방식의 대표적인 수혜자 중 하나이다. 때로는 실험적으로, 때로는 좀 더 전통적으로 방향을 조금씩 조정해가며 EXO의 디스코그래피는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이번 앨범 역시 그러한 장점들을 잘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장점들 때문에, EXO의 음악과 그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앨범을 만드는 모든 아티스트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 역시 그 존재감을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DON'T MESS UP MY TEMPO]은 지금까지 EXO가 발표한 정규 앨범들 중에서도 가장 '웰메이드 앨범'의 전통적인 개념에 가깝다. 곡을 구성하는 사운드의 요소요소가 복잡하지만 깔끔하게 쌓여 있고, 각 멤버의 보컬을 조절하고 배치하는 스킬은 과감해졌다. 지난 4집에서 실험적이고 트렌디한 실험을 했다면, 올해에는 EXO의 음악적 완성도에 집중한 의도가 보인다. 각 트랙에서도 이러한 의도들을 확인할 수 있다.

타이틀 곡인 'Tempo'에 대한 인상은 지난 앨범에서 'Ko Ko Bop'에 비교하면 일관된 성격의 곡이다. 물론 EXO의 대부분의 타이틀 곡이 그러했듯 보컬과 랩의 대비가 있고, 시우민과 백현의 변조된 보이스가 낯설게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낮게 깔리는 베이스 리듬과 리드미컬한 드럼, 곡 대부분에 촘촘히 겹쳐져 있는 멤버들의 보컬은 곡 전체의 흐름을 시종일관 그루비하게 이끌어간다. 이어지는 트랙 'Sign'은 무겁고 거친 베이스 리듬과 겹겹히 쌓인 멤버들의 코러스가 인상적이지만 안정적인 흐름을 타고 있는 곡이고, '중독(Overdose)'의 잘 재단된 버전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지난 앨범에 수록되어 있었더라도 좋았을 것 같은 라틴 팝 곡인 '닿은 순간 (Ooh  La La La)'은 앞선 두 곡보다 훨씬 미니멀한 사운드로 앞선 트랙들에서 생겨난 텐션을 완화하며 분위기를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4번 트랙 'Gravity'는 1,2번의 시원시원한 텐션과는 전혀 다른 긴장감을 형성한다. 레트로한 베이스 연주와 'Power'를 연상시키는 키치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대비는 곡에 긴장감을 형성하는데, 멤버들의 보컬들은 서로 촘촘하게 연결된 상태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타고 흐르며 코러스의 마지막에서 첸과 백현과 같은 메인 보컬들에 의해 날카롭게 터진다. 한 번 형성된 긴장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펑키한, 그리고 무거운 곡인 'Gravity'는 앨범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실험적이고 에스닉한 사운드의 안정적인 사용이 인상적인 '가끔(With You)'과, 세련되고 공간감이 느껴지는 사운드와 호흡까지 들리는 보컬의 조합의 감각적인 팝 곡인 '24/7', 곡을 구성하는 사운드들이 복잡하고 촘촘하게 배치된 '후폭풍(Bad Dream)' 등 SM과 EXO가 지금까지 보여준 장점들이 극대화된 트랙들이 연속적으로 흘러나온다. 특히 마지막 세 개의 트랙 'Damage'와 '여기 있을게(Smile On My Face', '오아시스(Oasis)'는 EXO의 특유의 감성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의 곡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안정감있는 사운드와 진행으로 EXO의 초기 음악에 대한 자기 오마주적인 인상을 주기도 한다. [DON'T MESS UP MY TEMPO]는 지금까지 그들이 쌓아온 음악적인 아이덴티티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무게감있는 총정리이며 그들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지표이기도 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지금까지 EXO의 음악에서 크고 작게 존재감을 차지하고 있던 세계관과 메세지를 점점 쉽게 인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관과 메세지를 포괄적으로 '컨셉'이라고 하자.) 그리고 EXO의 음악에서는 2집 [EXODUS] 이후로 그러한 컨셉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컨셉적인 정체성은 각 수록곡의 가사가 멤버들의 초능력과 관련되어 있다는 정도의 팬서비스적인 요소로만 자리를 차지할 뿐이다. 특히 앨범의 주요 비주얼 요소에 녹아있는 바이커 이미지는 이 앨범의 음악적 특징을 과연 어느 정도로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한다.

EXO는 독특한 세계관으로 데뷔 초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고, 팬덤 차원에서 그리고 미디어 차원에서 자주 회자되었다. 컨셉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세련되고 존재감 있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회사의 레드벨벳을 통해 증명되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EXO의 이번 앨범 뿐 아니라 잘 만들어진 피지컬 앨범들의 공통적인 장점인 트랙들 간의 음악적인 유기성은 지금처럼 파편적으로 곡을 감상하는 시대에는 그 빛을 발하기 어려운 장점이다. 특히, 독해 가능한 컨셉이 부재한 웰메이드 피지컬 앨범일수록 그 장점은 감상되지 않고 남겨진다. 이는 EXO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좋은 완성도의 피지컬 앨범을 만들고 있는 그룹들과 아티스트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웰메이드 앨범을 만드는 것과 좋은 컨셉과 메세지를 동시에 갖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EXO는 지금의 아이돌 씬에서 가장 중요한 팀 중 하나이고, 그 이유는 현재 가장 가장 큰 팬덤을 가진 팀이라거나, SM 엔터테인먼트의 적장자 계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EXO와 그들의 음악은 실험적이고 정교한 SM의 프로덕션이 가장 돋보이는 프로젝트 중 하나이고, 그들의 음악적 정체성은 2010년대 보이그룹들 사이에서 하나의 큰 축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늘날의 감상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프로모션 곡 이외의 다른 수록곡들을 찾아 듣게 하기 위해서는 -곡을 구성하는 사운드와 보컬의 완성도는 당연히 좋아야 하지만- 하나의 좋은 곡에서 리스너들이 경험한 감각적인 요소들을 이 아티스트의 다른 곡과 다른 앨범에서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해야 하고 실제로 그를 약속해야 한다. 감상 행위를 하는 순간 곧바로 독해 가능한 가사와 독창적인 컨셉, 그들의 디스코그래피 전체를 구성하는 큰 서사의 존재감이 중요한 이유이다. [DON'T MESS UP MY TEMPO]는 EXO의 과거와 현재의 음악을 정리하고 기념하는앨범이다. 이제 그들은 다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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