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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의 새로운 스텝

앞으로의 18년을 준비하는 아티스트


※ 12월 1일 브런치에 개제한 리뷰입니다. 



올 초 방송된 <키워드#보아>와 미니앨범 [ONE SHOT, TWO SHOT]은 보아의 새로운 행보를 알리는 예고였다. 8개월이 지난 후에 발표한 9번째 정규 앨범 [WOMAN]은 그 예고편을 이은 공식적인 본편의 시작이다. 타이틀 곡인 'Woman'은 일견 2005년의 'Girls On Top'으로 회귀한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유영진의 메세지가 보아를 통해 전달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2018년의 [WOMAN]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18년 동안 활동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해야 했던 보아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자기선언의 메세지가 담겨 있다.

타이틀 곡 'Woman'의 리드미컬하고 베이스 라인과 허공을 걸어나오는 퍼포먼스는 강렬하고 무겁다. SM의 주특기 중 하나는 중후한 사운드와 화려한 안무를 함께 보여주는 구성력이었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보아가 있었다. 보아의 지난 3년 동안의 활동에서는 'The Shadow'와 'CAMO' 정도만이 그러한 성격을 한 곡이었는데, 지난 미니앨범에서 '내가 돌아'가 보아가 무엇을 하는 아티스트인지 강조하는 곡이었듯, 다시금 눈에 띄는 안무와 무겁고 날카로운 사운드의 곡이 타이틀 곡으로 선정된 것 역시 보아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재확인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제 2의 누군 존재 하지 않아"가 가지고 있는 프라이드는 2010년의 'Copy & Paste'에서 "BoA DNA, 이유있는 자부심"보다 더 여유있어졌고, "여자다운 것 강요했던 그때 (Girls on top) / 여자다움 몰랐었던 그때 (Did’t know that)"에서 보이는 성찰은 'Girls on Top'에서 외쳤던 정론보다 더욱 보아 스스로와 긴밀하게 밀착되어 있다. 'Woman'은 여성이자, 18년차 가수이자, 노련한 퍼포머인 스스로를 보아가 긍정하는 선언이자 앞으로의 새로운 행보를 향한 약속이기도 하다.

입체적이고 몽환적인 '홧김에(Irreversible)'와 오랜만에 보아의 거친 질감의 보컬이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위에서 시원하게 터지는 'Encounter', 농후한 감성과 화려한 사운드의 트로피컬 사운드 곡 'No Limit' 같이 보아가 직접 작업한 댄스 트랙들은 몽환적이고 공감각적인 보아의 싱어송라이퍼로서의 경향성이 잘 발현된 트랙들이다. 보아가 편작곡에 참여하지 않은 트랙들 역시 SM의 프로덕션 능력이 돋보이는 좋은 완성도이다. 플럭 신스 사운드와 그루비한 멜로디, 파트에 따라 톤을 달리하는 보아의 자유로운 보컬의 'Like It!'은 타이틀 곡 이상의 풍부한 진행이 돋보인다. 레트로한 리듬과 사운드의 신스팝인 '너와 나(U&I)', 경쾌하고 청량한 기타 리프가 특징적인 '습관 (I Want You Back)' 등 다채로운 장르의 곡들이 연속적으로 흘러나오며 앨범 전체를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전통적인 피지컬 앨범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하게 수행하도록 만드는 아티스트, 특히 솔로 댄스 아티스트가 점점 적어지는 상황에서 [WOMAN]은 그 어느 때보다 준수하고 중요한 앨범이다. 

물론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그들의 에디튜드와 메세지와는 방향성을 달리하는 A&R은 앨범 전체의 메세지성을 흐트러뜨리고, 대중과의 괴리를 좁히는 데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작년의 이효리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었지만 그의 주특기인 방송 활동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보아의 경우는 문제를 중화시킬만한 외부 활동이 없고, 'Woman'에서 보여준 메세지성과는 다르게 곡 자체의 사운드 구성과 보아가 편작곡에 참여하지 않은 트랙들은 보아가 직접 편작곡한 트랙들의 음악적 방향성과 완성도에 완벽하게 부응하지 못한다. 비욘세와 오션스 8을 오마주한 뮤직비디오는 보아의 메세지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고, 빈약한 홍보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보아라는 중요하고 유능한 아티스트가 가진 능력과 그가 앨범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을 회사가 제대로 이해하거나 서포트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아 뿐 아니라 소녀시대, 엠버, 동방신기 등 회사의 중견 아티스트들의 최근 행보에서 공통적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고, SM의 정확한 자가진단과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엄정화의 [The Cloud Dream of the Nine]과 이효리의 [Black]에 이어 보아의 [WOMAN]은 지금의 가요계, 특히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위상을 지탱하고 있는 세 여성 아티스트가 음악과 업계, 자신들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엄정화는 그의 마지막까지 화려하고 범접할 수 없을 디바로 남기를 선택했고, 이효리는 그의 새로운 삶의 방식과 서울이라 칭해지는 시공간에 대한 애증, 그리고 "검은 머리 검은 눈 검은 옷을 입고 춤을 출래"라는 가사로 말했듯 여성 댄스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려는 자신의 고민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리고 2018년의 보아는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긍정하면서도 무엇이 여성 아티스트이고 무엇이 여성성인지는 자신이 결정할 것이라며 선언하고, 그 선언에 따를 행보를 이어가기 위해 자신의 편작곡 능력과 퍼포머로서의 능력을 재강조했다. 특히 2018년 보아의 행보는 시의적으로, 음악적으로 매우 중요한 활동이었고 그만큼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뚜렷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쉬운 점으로 느낀 지점들이 언제까지고 아쉬운 상태 그대로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보아는 자신과 그가 서 있는 세계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여성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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