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U의 일곱 번째 감각이 공개된 후 많은 SM 아티스트 팬들과 평론가들은 그들의 이후 행보에 주목했다. 그 동안 ‘랩’으로 이런저런 스트레스를 받아온 회사이니만큼 단단히 준비했다는 인상이 강했고 그 결과물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7월, NCT의 서울팀인 NCT 127의 데뷔 앨범은 준수한 완성도의 미니 앨범이 나왔다. 그 동안 SM에서 볼 수 없었던 장르의 곡들로 가득 차있고, 태용과 마크의 랩은 그 동안의 논란을 (그것이 SM이 힙합 장르는 못 하는 회사라는 오명이든, “Why are they doubting TY?” 라는 Mad Town의 가사처럼 멤버 태용에 대한 논란이든) 끝내는 듯 시원시원하다.


하지만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소방차(Fire Truck)의 뮤직 비디오 중 한 장면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터넷 어디선가 피어올랐다. 소아성애적 표현과 성폭력적인 묘사가 있다는 것이다.


NCT 127의 소방차 (Fire Truck) M/V 중 문제의 장면
NCT 127의 소방차 (Fire Truck) M/V 중 문제의 장면


소방차의 뮤직 비디오를 감상하다보면 NCT 멤버들이 한 백인 소녀를 둘러싸고 그녀가 만든 모래성을 물총을 쏘아 망가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소녀는 무기력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다. K-POP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고 그에 대한 리액션 영상을 올리는 해외 유튜버들 중에서는 이 장면을 아무런 위화감 없이 넘겨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그들의 리뷰 영상에서 상당히 당혹스러운 표정을 비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포털 사이트나 SNS에서 ‘소방차 뮤비’를 검색하면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갑론을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SM 측은 이에 대해 “주인공의 어린 시절부터, 학창시절, 노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NCT 127 멤버들이 나와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린다”“이 장면은 곤경에 빠져있을 때 그 누구보다 빨리 달려와 문제를 해결해주는 소방차로 표현돼 시원하고 통쾌한 느낌을 준다”며 해명했다. 이 논란에 대해 상당히 신경쓰는 듯 지난 22일 엠넷의 <MPD 뮤비 코멘터리>를 통해서 멤버들의 입을 통해 다시 한 번 설명하기도 했다. 실제로도 문제의 장면 후 소녀의 모래성에 불이 붙어있던 것이 묘사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았는지, 여전히 그 장면에 대해 불편함을 가진 사람들은 상당수 존재한다. “어떻게 모래성에 불이 붙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어째서 스토리를 푸는 과정에 그러한 묘사를 채택했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이미지에는 텍스트성이 존재한다. 특정한 이미지를 접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추리하게 된다. 빨간색과 노란색의 교통 표지판을 보면 자연스럽게 경고 혹은 주의의 메시지를 도출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창작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감상자의 주관과, 그 이미지가 가지는 텍스트성에 기반하여 이루어진다. 특히 어떤 특정한 이미지들에는 사회적으로 이미 널리 알려진 사회적 텍스트성이 존재한다. 뮤직 비디오에 그러한 묘사를 그려낸 창작자의 의도가 비록 감상자에게는 읽혀지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을 무시하고 “이것의 의미는 A이다.”라고 ‘옳은’ 해석을 강요할 순 없다. 그것은 감상자가 가지는 해석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이미지의 텍스트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행동이다.


물론 모래에 어떠한 이유로 불이 붙어 그것으로부터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 물총을 쏜 것이라는 SM의 해명대로 해석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기력해 보이는 소녀를 둘러 싸고 여러 남성들이 소녀의 다리 사이에 놓인 모래성을 향해 물을 쏘는 이미지는 충분히 ‘잘못 해석’될 여지가 있는, 사회적 텍스트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로리타적 이미지를 담은 아트가 유행하는 동시에 성범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한 요소들을 무시한 채 자신들이 의도한 메시지는 이것이라고 구태여 강조하는 것은 그것은 모래에 불이 붙는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처럼 억지스럽게 들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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