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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의 경고가 향해있는 곳

'가시나'를 발표하고 난 이후의 선미에 대해 설명하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고혹적이고, 복고 컨셉과 사운드가 특징이고…." 같은 말로 선미는 쉽게 표현되지 않는다. 왜 자신을 떠나가냐는 원망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붉은 조명에 거실에서 알 수 없는 춤을 추고, 관계에서 주도권을 잃었으면서도 활짝 웃으며 쇼는 계속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그를 쉽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사실 그를 이해할 수 없는게 당연하다. 선미는 더 이상 우리에게 있어 감상이나 소비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선미는 카메라 너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어쩐지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을 느끼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선미가 의도이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가시나'와 '주인공'을 이은 [Warning]은 1년 반 동안의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인 동시에, 앞선 두 곡을 트레일러로 삼은 본편이다. 80년대 팝씬에서 유행한 장르들을 기반으로 한 곡들은 선미의 주특기이고, 복고적인 색감이나 의상 모두 여전히 화려하다. 원더걸스의 [Why So Lonely] 앨범의 타이틀 곡 후보로 경쟁했다는 이력을 납득하도록 만드는 완성도의 'Siren'은 선미가 작사, 작곡했다. (원더걸스의 [REBOOT] 앨범과 [Why So Lonely]에 참여한 적이 있는 프란츠(Frants)가 편곡을 담당했다.) 수록곡들 역시 선미가 직접 만든 곡들이고, 다양한 질감의 사운드가 돋보인다. 경쾌하고 대담한 사운드의 'Siren'을 지나면 재지한 피아노 연주와 불규칙한 트랩 비트의 '곡선'이 흘러나온다. 반복적인 베이스 연주와 색소폰 연주가 인상적인 어덜트 컨템퍼러리 풍의 곡인 4번 트랙 'Black Pearl' 역시 선미의 레트로 취향이 진하게 묻어있다. 그가 레트로를 주제로 얼마나 잘 풀어낼 수 있는지는 두 개의 싱글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그럼에도 비슷한 소재들을 하나의 피지컬 앨범의 형태로 다시 풀어냈다는 점에서 선미가 대단히 의욕적이고 영민한 아티스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동일한 주제나 컨셉으로 1년 반에 걸쳐 매력적인 작업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앨범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복고 컨셉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지만, [Warning]은 특유의 긴장감과 메세지성으로 가득한 앨범이다. 이 앨범의 의도와 목적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이것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Who’s running the show"가 반복되는 첫번째 트랙 'ADDICT'에서 선미는 주인공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쇼의 지배자는 자신이라고 선언한다. 이 쇼에서 선미는 단순한 퍼포머나 비극적인 이야기 속 인물을 연기하는 주인공(Heroine)이 아니다. 오히려 이 쇼의 주인, 호스트에 가깝다. 그리고 이 쇼는 결코 방문객들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접대하지 않는다. 화려하고 주술적인 인트로 트랙을 지난 곳에는,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홀려 스스로 배를 암초에 부딛히게 만든다는 그리스 신화 속 괴물 사이렌을 모티브로 한 'Siren'이 위치하고 있다. 곡이 시작하자마자 "내가 말했잖아 속지 말라고"라는 가사와 함께 선미는 욕조에서 기어 올라오며 청자를 위협한다. 이 트릴로지 안에서 욕조는 꽃으로 가득한 환상에 놓인 선미와 마치 시체와 같이 경직된 모습의 선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어쩌면 대상화된 여성 가수로서의 선미를 상징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욕조에서 빠져나온 선미는 우리의 기대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욕조 바깥에서 선미는 자유롭게 때로는 기괴하게 보이기도 하는 춤이나 몸짓을 보여주며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의 존재나 감상은 상관없다. 그에게 있어 청자들은 그가 명명한대로 'Addtic: 쇼와 오락거리의 중독자'에 불과하고, 선미는 이 쇼의 유일한 주인이기 때문이다. 


경고음이 울린 후, 과장된 실루엣의 호피무늬 옷을 입은 선미는 붉은 색 조명 일색인 방 안에서 '가시나'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알 수 없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모습을 우리 뿐 아니라, 또 다른 선미가 지켜보고 있다. 선미는 쇼케이스와 여러 매체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두 명의 자아'를 강조했다. 한 명은 개인으로서의 선미이고 다른 한 명은 아이돌, 여성 가수, 퍼포머로서의 선미이다. 개인인 선미는 아이돌 선미를 어색해하고 때로는 거북해하며 피한다. -이 은유는 새장 안의 장미를 무관심하게 바라보는 씬에서도 표현된다.- 많은 방에서 또 다른 자신들을 확인하던 그는 결국 새장 안에서 그 모든 자아와 결합한다. (선미는 쇼케이스에서 이 씬에서의 새장은 '작살'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선미는 자신의 단점이 감정 기복이 심하고 산만하며, 불안하고 정신사납다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단점들을 가수로서의 아이덴티티로 만들고 긍정하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지금의 선미가 특별한 점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장치와 수단을 자유롭게,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계산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계산하고, 예측하고, 약속된 타이밍에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객체-배우가 하는 일이다. 선미는 곡에서, 앨범에서, 그리고 무대에서 스스로가 주체이며 주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속되지 않은 타이밍에 마치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듯 새끼 손가락을 올리고, 계획된 안무가 아니라 몸이 가는 대로 춤을 추고, 무표정으로 일관하다도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는 것이다. 선미는 우리에게 자신이 무엇을 보여줄지 약속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그의 가사대로, 우리의 환상에 아름다운 선미는 없다. 선미는 이미 경고했다. "이 손을 잡는 순간 너는 위험해질거라고."


'가시나'에서 시작해 [Warning]으로 완성되는 이 쇼는, 선미가 모든 자신을 받아들이며 스스로가 주체로 존재함을 선언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동시에, 선미를 단순히 미적 대상으로서 관측하며 '그저 예뻐라 예뻐라 / 곱구나 곱구나'하는 감상을 쉽게 내뱉은 우리들에 대한 폭로이자 경고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경고와 폭로는 사람들을 불편하고 긴장하도록 만든다.


트위터 : Lirio_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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