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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중용적 걸그룹



강렬한 리듬과 에스닉한 패턴의 장식들, "널 잊으리라 / 널 지우리라"의 주술적인 가사를 듣고 2000년도 샤크라가 발표한 동명의 곡을 연상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러한 스타일의 작업물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중음악 씬에서 크게 유행했었지만, 아이들이 과거의 것을 답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가장 현대적인 걸그룹의 표상의 울타리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걸스 힙합의 장르적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곡이고, 가사의 중심 소재는 연애, 사랑, 이별이며, 고혹적이고 화려한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연기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다른 그룹들과는 분명히 다른 정체성과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활동 목표와 전략이 절제와 중용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현재 그 어떤 그룹들보다도 가장 균형잡힌 행보를 걷고 있다.


아이들의 '한'은 뭄바톤 소스의 하우스 장르 곡이이고, 'LATATA'에서 보여줬던 서늘하고 무거운 톤을 더 강조한 곡이다. 그러면서도 묵직하고 절도있는 흐름을 타다 후렴구에서 터져나오는 시그니처 멜로디는 전작의 곡 구조를 어느 정도 이어간 인상을 준다. 소연의 흡입력있는 랩과 제스처, 눈에 띄는 독특한 퍼포먼스, 후렴구 직전의 텐션을 올리는 우기의 보컬 등 전작의 장점으로 지목할 수 있었던 구성과 요소를 '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운드의 구성은 전작보다 더 절제된 편이지만, 음절 단위로 나뉘는 가사와 낮은 톤과 가성을 오가는 멤버들의 음색을 강조하며 개인의 캐릭터는 더욱 강조되었다. 소연의 작사/작곡과 디렉팅 능력이 더욱 특별하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차갑고 몽환적이면서도 강렬한 분위기의 곡은 매우 컨셉츄얼하고 눈에 띄지만, 그 안에서 멤버 각자가 정체성을 이루고 그를 표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곡 자체와 뮤직 비디오, 그리고 무대에서 모두 보여주며 그룹과 개인의 인상을 확실하게 인지시키기란 더욱 쉽지 않다. 

싱글로 발매된 구성은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들을 수 있었던 데뷔 앨범과 비교해 아쉬운 점이지만, 하나의 곡에서 강조할 수 있는 요소들을 최대한 끌어내 그룹의 음악적, 이미지적 컨셉과 정체성을 확고하게 못 박을 수 있었던 것은 싱글이 가지는 장점이기도 하다. 소연의 작사, 작곡 능력을 어느 정도 내세우면서도 그룹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에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태도 역시 주목할만한 전략이다. (특정한 멤버를 메인 멤버로 내세우는 것에 매달렸던 그룹들이 후에 그룹 자체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실패한 수많은 전례를 생각해보자.) 아이들은 음악적으로도, 비주얼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과도한 강조와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쳐내야만 보여줄 수 있는 행보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아이들이 지금까지 걸그룹들이 해 온 것과는 다른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샤크라와 브라운 아이드 걸스, f(x) 같은 실험적인 그룹들이 이미 아이들 이전에 주술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내세웠고, 트렌디한 사운드와 리듬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그룹 역시 많다. 걸스 힙합 장르와 강한 여성상을 내세운 그룹 역시 우리가 이전에 본 적 없는 바가 아니다. '새로운', '이전에 본 적 없는' 같은 키워드는 아이들이 추구하는 지점이 아니다.

아이들이 -그리고 소연이- 다른 그룹들과 달라보이는 이유가 있다면, 이미 K-POP 씬에서 이미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재료들을 절제된 질감으로 재생산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노래를 하지만 트와이스의 그것처럼 수동적이거나 맹목적이지 않고, 리드미컬하고 역동적인 걸스 힙합을 추구하면서도 블랙핑크처럼 흥의 극한을 달리지도 않는다. 레드벨벳처럼 어딘지 불안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띄지도 않는다. 이는 포미닛과 CLC을 거쳐가며 너무 하드코어하지도, 걸그룹의 정석을 따라가지도 않으려는 교훈을 얻은 큐브의 노하우일 수도 혹은 <프로듀스 101>과 <언프리티 랩스타 3>에서 서로 대조적인 음악적 경험을 쌓은 소연의 능력이 만든 결과물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걸그룹의 레드오션에서 대중적인 감각과 스마트한 기획력을 갖춘 아이들은 2018년 '걸그룹'이라는 개념의 스펙트럼에서 가장 중도에 위치해 있다. 이 균형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또 다른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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