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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의 가변적 세계

차가운 벨벳에서 다시 여름으로


레드벨벳 'Summer Magic' 티저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레드벨벳 'Summer Magic' 티저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Summer Magic]은 레드벨벳이 '여름'이라는 키워드를 어디까지 변주할 수 있는지 시도하는 앨범이다. 직관적이고 하나의 지배적인 컨셉을 포함하며 한 앨범의 총체적인 이미지를 '빨간 맛' 대표하고 있던 [The Red Summer]과는 차이가 있다. 'Power Up'은 앨범을 시작하는 인트로 곡으로서 위치한다. 그리고 각 수록곡들은 여름의 구체적인 키워드와 메세지, 그리고 그를 표현할 수 있는 각각의 장르와 사운드 믹싱으로 파편적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앨범이 '빨간 맛'의 후속작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레드벨벳, SM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잘 다듬어진 프로덕션이 돋보이는 트랙들을 지나는 동안 레드벨벳이 어떤 음악을 하는 그룹인지에 대해 재확인을 시켜주는 앨범에 가깝다.


레드벨벳 'Summer Magic' 커버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레드벨벳 'Summer Magic' 커버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Power up'은 여름화된 '러시안 룰렛'이라는 인상이 강한 곡이다. 가볍고 경쾌한 보컬튠이 반복되는 도입부와 후렴구, 멤버들의 목소리가 보컬 그 자체보다도 곡을 구성하는 사운드 소스 중 하나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시간은 벌써 3시"로 시작하는, 인터넷 밈에서 따온 듯 한 가사 역시 레드벨벳 특유의 정신 없는 표현의 가사를 연장한다. '빨간 맛'과 '피카부'는 뚜렷한 구조의 가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이 쪽이 좀 더 레드벨벳다운 셈이다. 고전 게임을 연상시키는 사운드와 어지러운 가사들, 여름의 키워드, 멤버들의 보컬튠은 하나의 통일을 이루지 않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극히 레드벨벳스러운 인트로 곡이 지나면 역시 레드벨벳표 R&B 곡인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로 이어진다. 언제나 다양한 스타일의 R&B 곡들을 발표해왔던만큼, 플럭 신스 사운드와 뭄바톤 리듬을 사용해 여름의 톤을 유지하면서도 캐롤의 메세지와 요소를 사용하고 있는 독특한 곡이다. 앞선 트랙과는 달리 레드벨벳 특유의 부드럽고 뚜렷한 질감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트랙 배치 역시 눈에 띈다.

리드미컬한 리듬과 중첩된 보컬의 후렴구가 눈에 띄는 'Mr.E'와 'Hit That Drum'은 그들의 데뷔곡인 '행복'이 떠오르는 곡이다. 강한 사운드 때문에 비교적 귀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지만, 각 파트에서 호흡과 음색의 완급을 조절하는 멤버들의 보컬 역시 주목할 만 하다. 아마도 이 앨범에서 가장 감각적이고 표현적인 가사를 가지고 있을 'Blue Lemonede' 역시 가사에 어울리는 신스 베이스와 아기자기한 사운드 소스를 사용해 레드벨벳 특유의 음악적 특징을 이어가고 있다.

레드벨벳 'Summer Magic' 티저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레드벨벳 'Summer Magic' 티저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빨간 맛'으로 레드벨벳 음악의 대중화에 성공하고 '피카부'와 'Bad Boy'로 걸그룹의 전형적인 이미지와 음악적 특징을 비튼 행보 후의 앨범이니만큼 이번에도 그들이 무언가 새롭고 다른 것을 보여주리라 기대하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제는 레드벨벳을 향한 기대감이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레드벨벳은 소녀시대처럼 웅장한 성장 서사를 향해 달려나가거나, f(x) 같이 실험적인 상상을 펼치는 그룹이 아니다. 레드벨벳의 세계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걸그룹의 표상을 재생산하면서도 함부로 다가가거나 추측하기 어려운 그로테스크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걸그룹의 질감과 형식을 따라가면서도 늘 그 이외의 무언가 다른 의도를 품은 것 같은 표정과 퍼포먼스, 메세지를 보여줌으로써 레드벨벳은 유동적으로 보이면서도 분명한 방향과 목적을 향해 이동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 위치에 존재한다. '레드'와 '벨벳', '소녀'와 '마녀', '걸그룹'과 '팜므파탈' 사이에 레드벨벳이 있다. 언제든 무엇으로든 변화 가능한 '무언가'의 상태로 남아있으면서. 그리고 그 정의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것이야말로 레드벨벳의 의도이며 목적이다.

고혹적이면서도 서늘하고 그로테스크한 일면을 보여준 후 레드벨벳은 그들이 이전 행보들에서 보여준 밝고 경쾌한 세계로 돌아갔지만, 청량한 블루 레모네이드 같은 여름이 언제 다시 어둡고 불안한 붉은 벨벳으로 표변하게 될 지는 모르는 일이다. 레드벨벳은 늘 그래왔으니까.


트위터 : Lirio_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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