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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의 메타 자아(Meta-ego)

태연의 보컬, 혹은 태연이라는 아티스트의 가장 뚜렷한 음악적 아이덴티티는 그의 첫 솔로 앨범의 타이틀 곡 'I'나, '소원을 말해봐'에서의 독창 같이 시원시원한 고음으로 대표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 동안 적지 않은 곡들을 발표했고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왔지만, 사람들이 태연에게 기대하는 부분을 충족시켜주는 트랙이 하나 쯤은 있었던 것 역시 그의 보컬에 대한 뚜렷한 이미지를 가지게 한 요인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태연의 강하고 시원한 보컬을 기대하던 사람들에게 [Something New]에 아쉬움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팝 발라드 위주의 곡을 발표했던 것과 달리 이 앨범은 네오 소울, R&B 같은 흑인 음악 위주의 리드미컬한 곡들 위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데뷔 11년 차, 서른 살의 태연은 더 이상 그런 기대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곡을 쓰지 않음에도, 태연의 음악적 관심사는 오로지 태연 자신을 향해 있다. [Something New]는 그의 정체성과 목소리가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이다. 그에게는 익숙하지만,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써.


태연 'Something New' 앨범 커버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태연 'Something New' 앨범 커버 이미지. ⓒSM엔터테인먼트

'Something New'는 독특한 구성의 곡이다. 반주 없이 태연의 보컬과 보코더 코러스로 구성된 인트로가 지나면 소울풀한 사운드와 그루비한 베이스 리듬으로 이어지는 이 곡은 "네오 소울 장르의 어반 팝 곡"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어느 정도 누 디스코의 장르 문법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사운드 위에서 "눈뜨면 습관처럼 또 새로운 뭔가를 찾는 꼴 / 넘치면 넘칠수록 독인 줄도 모르고"을 관조적으로 노래하는 태연의 보컬이다. 태연 보컬의 트레이드마크 쯤으로 여겨지던, 내지르는 고음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깊은 감정을 담고 노래하는 곡도 아니다. 곡이 진행되는 내내 태연은 시종일관 냉담하고 차분하다.

'저녁의 이유', '바람 바람 바람' 같은 수록곡에서도 그는 감성적이거나, 드라마틱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이전에 발표한 어떤 앨범들보다도 리듬감이 중심에 있는 앨범임에도, 이전에 발표한 어떤 앨범들보다도 차분하다. 자신의 감정에 응답하지 않는 상대를 향한 감정을 다룬 곡인 '바람 바람 바람'에서도, 킬링파트라고 할 수 있는 "난 바라 바라 바라봐"에서 자신의 음색을 뒤틀고 꺾으며 노래하지만 태연은 슬퍼하거나 격정적인 감정을 담지 않는다. 앨범 전체를 감싸는, 차분함을 넘어 냉소적으로 보이기하는 태도와 그를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창법은 이전 태연 음악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소녀시대의 멤버로 활동하며, 그가 'Kissing You' 같은 전통적인 걸 그룹 팝 곡과 컨셉으로 활동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Run Devil Run'이나 'Hoot'과 같이 날카롭고 강렬한 사운드의, '소녀'스럽지 않은 곡들을 좋아했다는 것은 여러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태연이 스스로 곡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님에도 그의 첫 솔로 앨범의 타이틀을 [I]로 결정한 것처럼, 태연의 음악적 주제는 태연 그 자신이다. 그렇지만 솔로 아티스트로서 활동하면서도 그는 어느 정도는 소녀시대가 취해왔던 태도 혹은 그 연장선에 있는 곡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장르성과 창법, 태도를 변화시킨  [Something New]야말로 태연 (혹은 탈-태연)을 가장 잘 나타내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태연 'Something New' 뮤직비디오 중. ⓒSM엔터테인먼트
태연 'Something New' 뮤직비디오 중. ⓒSM엔터테인먼트

태연의 음악을 감상하며 주목해야 할 점 중 하나는, 그가 지속적으로 뮤직비디오에서 자유로운 홀로됨을 은유하거나 강조해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앨범에 담긴 태연의 새로운 의도와 태도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뮤직비디오를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I'의 뮤직비디오에서 태연은 손님들을 친절하게 응대해야하는 서비스직(종업원) 생활을 버리고 또 다른 자신이 있는 곳으로 향하며 밝게 웃는다. 'Why'에서는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거나, 벽에 낙서를 하고, 수영장을 거품으로 채우거나 캐첩과 머스타드를 사람을 향해 쏘는 등 일탈적이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 은유와 이미지들은 태연의 걸 그룹으로써의 활동과, 그를 오랫동안 따라다녔던 가십과 루머들과 결합되며 일종의 성장 서사로써 작용되었다. -혹은 독립 서사로.- 첫 솔로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이 영미 팝 시장의 주류 음악들을 매우 닮아있다는 것 역시 일련의 이미지들을 더욱 특정한 방향으로 강화시켰다.

'Something New'에서 그는 더욱 직접적이지만, 전작들과 조금은 다른 의미가 담긴 은유를 사용한다.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과 난투를 벌이거나, 돈으로 가득찬 수트케이스를 절벽에 던지며 총을 쏘는 태연의 모습은 아이돌 스타로써 자신을 공격하는 미디어와 안티들, 그들의 공격을 겪어내며 돈을 버는 생활에 대한 염증과 거부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서사를 담은 비디오를 지금까지 많은 아티스트들이 보여주곤 했다. 그렇지만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태연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브라운관 TV에 잡히며 그 광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태연의 얼굴이 비친다. 이 마지막 씬은 앨범 전체를 감싸고 있는 차분하기도 냉소적이기도 한 태도와 맞물리며 이전의 두 앨범에서 보여줬던 메세지와 전혀 다른 방향성으로 흐른다. 그것은 앨범 소개문에 적힌대로 "늘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점차 획일화되어가는 현대인들의 일상 속에서 저마다의 개성을 찾아보자"는 의도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이전 행보와 시도들이 하나의 상업 콘텐츠나 흥밋거리로 가볍게 다뤄지는 현실에 대한 자조일 수도 있다. 태연이 이 앨범으로 방송활동을 하진 않을 계획이라는 소식은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시장에서의 태연이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태연만을 남겨두겠다는 결심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태연은 대중 가수로서의 성공적인 커리어와 아이덴티티를 비틀며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표현 방식을 새롭게 바꿨다. 자신의 강점이던 시원한 고음의 창법을 접어두고, 메타-아이돌의 시점에서 스스로의 행보를 관조적으로 보여주는 태연은 아이돌 가수도 성공한 솔로 팝 가수도 아닌 '무언가 새로운'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표현하거나 수식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찾는 것보다는 그냥 태연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 태연은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봐 온, 그리고 기대해 온 태연과는 분명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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