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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펠트, 언어의 음악

원더걸스로써의 여정을 끝내고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선미는 '가시나', '주인공' 활동을 통해 성공적으로 솔로 아티스트로 자리를 잡았고 유빈은 최근 첫 솔로 싱글 '숙녀'로 돌아왔다. 대학 생활을 보내며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소재로 한 책의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는 혜림을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예은-핫펠트는 4인 체제 원더걸스로 활동하기 전부터 이어온 솔로 활동을 조용히 이어가고 있다. [Deine]은 그가 6달만에 내놓은 그간의 안부 인사다. 

지난 4월 공개된 [Deine]은 작년 발표한 [MEiNE]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매우 솔직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나란 책'의 가사 "여섯 살 동생이 태어나던 때와 열두 살 분노를 처음 배운 때와 열다섯 남겨졌다는 두려움과 그리고 열여덟 가슴 벅찼던 꿈"과 같이, "그냥 '예은아'하고 불러 괜찮아요"라며 핫펠트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자신의 감정을 있는 꾸미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차이가 있다면 [MEiNE]이 핫펠트 자신에 대한 감정을 드러낸 작업이었다면, [Deine]은 상대에 대한 핫펠트의 감정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핫펠트는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팝적인 음율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위로가 돼요'와, 편안한 사운드의 어반 R&B 곡 'Cigar'는 핫펠트의 대부분의 곡들이 그러하듯 가사를 중심으로 감상해야 하는 곡이다. 사랑의 양면성을 소재로 한 두 곡은 상대에게 흥미를 가지고 다가가는 과정과, 상대방의 권태로운 감정을 알게 된 날 같이 상반된 상황에 놓여있다. 그렇지만 두 곡 모두 사랑에 대한 핫펠트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고 섬세하게, 일상적인 어투로 묘사하는 것에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핫펠트의 음악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왜 그렇게 친절해요"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위로가 돼요'는 상대에 대한 그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일상적인 질문들을 반복적으로 던진다. 혹시 말랑자두를 좋아하는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이 무엇인지, 몇 시쯤 자는지, 처음 본 사람과 밤을 보낸 적이 있는지와 같이 일상적이지만 과감한, 누구나 마음 속으로 호감을 가진 상대에게 품을 법 한 질문들을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반복적인 일렉 기타 연주와 가벼운 신스 사운드, 잘게 쪼개진 비트는 가사에 붙여진 곡이라기보다도 이 질문들의 배경음악으로써 기능한다.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듯 읊어지는 가사와 'BGM'은 상대에게 호감과 관심을 가진 핫펠트의 이미지를 마치 소설처럼 묘사하고 그려낸다.

'Cigar' 역시 멜로디와 사운드, 보컬이 아닌 가사로 정서를 드러내는 곡이다. "넌 가고 없는 침대에 누워 울고 있는 내가 나도 우스워"같이 자전적이고 자조하는 듯 한 가사는 일상적인 동시에 문학묘사적이다. 시부야계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어반 힙합 스타일의 사운드 위로 마치 담배 연기처럼 흩어지는 듯 한 흐릿한 창법의 보컬 역시 의도적이다. 가사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스킬도 지난 [MEiNE]보다 더 안정적이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가사로 전달했던 곡들은 인상적이고 과감했지만, 가사를 곡의 중심에 두는 작업은 메세지를 청각적으로 전달하는 스킬에 숙련된 개코와 펀치넬로에게 더 유리했다. 이번 앨범의 작업에 피쳐링을 두지 않은 것은 전작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솔로 아티스트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매우 여러가지가 있다. 특정한 장르를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가거나, 일관된 컨셉을 유지하고, 고유한 보컬의 특색을 강조하는 등의 방법론들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은 성공할 때도 있으나, 실패할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상업적인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룹에서 솔로로 독립한 많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구현하고 단단하게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는 그룹에서 솔로로 독립한 아티스트들 뿐만 아니라 솔로로 시작한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부여되는 과제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활동을 이어가다 쇼 비즈니스 업계의 다른 직업으로 전향을 하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한다. 

핫펠트는 자신의 정체성을 가사를 포함한 '언어'로 묘사하기로 선택했다. 첫 솔로 앨범이었던 [Me?]부터 [Deine]에 이르기까지 그의 음악에서 가사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장르와 사운드는 가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마찬가지로, '예은'이라는 이름은 걸그룹 아이돌로써 사랑과 외모에 대한 대중들의 판타지를 -혹은 박진영 프로듀서의 판타지를-구현해온 정체성이었다. 그로써는 원더걸스의 멤버로 알려진 예은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핫펠트라는 새로운 닉네임을 덮어쓰고 나서야 비로소 진솔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핫펠트의 세계관은 언어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관은 핫펠트의 내면과 작업물 양쪽에서 모두 단단하게 굳어져가고 있지만, 그것이 핫펠트의 음악이 경직되어 있고 고집스럽다는 의미는 아니다. 위에서도 말했듯, 그는 장르와 사운드를 가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이용하고 있고 다양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핫펠트는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겪는 많은 감정들이 있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감정들을 표현하고, 사람들이 나의 음악을 통해 그것을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우리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다.

트위터 : Lirio_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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