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앞으로 쓰여질 한 줄에 대해.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에 부쳐야 했을 글.



1.

일단 개인적으로는 우여곡절이 있는 행사였다. 아이돌로지 편집장 미묘님께서 추천해주시고, 전대한 평론가님께서 참여를 권유하신 메일을 마감주에야 확인했기 때문에 학부 스케줄과 가사 노동 스케줄을 쪼개고 미루며 겨우 한 앨범을 짧게 다룬 원고를 보낼 수 있었다. 원래 참여하지 못할 예정이었던 전시 관람과 프로그램에도 주변 사람들의 배려 덕에 다행히 양일 동안 세 개의 워크샵을 볼 수 있기도 했고. 다른 필자분들의 원고를 확인하고 나서야 본 행사의 주최 의도와 메세지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않고 해맑게 앨범 하나의 리뷰 수준에 머무른 글을 보내게 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게 되었지만.


2.

"비평가는 어떠한 존재인가?", "비평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써왔고, 무엇을 써야 하는가?", "비평가로서 -특히 '여성' 비평가로서- 존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비평계의 재건 혹은 구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세부적인 주제와 방향은 다를지라도 거의 모든 원고는 (일단 내 원고를 제외한다면) 이러한 물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 역사가 짧고, 예술적 전통과 학술적 성과, 주류 대중문화에서 단절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비평가로써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경제적 보상이 부재한 상황에서 대중 음악 비평가들의 정체성은 매우 희박한 상태로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재하는 물리적인 평단, 즉 비평'계'라는 것이 과연 실재하는 것인지 우리는 감지하기 어렵다.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평단과 비평계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 문학과 미술 분야나 영미 팝씬의 롤링 스톤, 빌보드 같은 대중음악 미디어와 이 곳을 나란히 두고 비교한다면 그 정체성과 존재감은 더욱 옅어진다. 거트루드 스타인이나 로제 마르크스, 귀스타프 제프루아, 미치코 카쿠타니 같이 문학 및 예술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고 좋은 모델이 될 만한 비평가들도 우리에게는 부재하다. 웹진 단위로, 개인 단위로, SNS의 계정 단위로 흩어져 있는 채 유의미한 담론과 존재감 있는 글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국내 대중음악 비평계의 현실을 전대한 비평가님은 "폐허" 혹은 "폐허 위의 폐허"라고 표현한다.

여러 필진분들은 이 현실에 분노하거나 책임감을 느끼거나 절망하거나 혹은 기회나 희망을 포착했다는 다양한 요지의 글과 발언을 하셨지만 사실은 이 모든 감정과 생각을 함께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아직은 이 현실을 어떻게 해결해나갈지에 대한 해답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사소하게나마 시도하는 어떠한 노력들은 이어져야 한다. 김영대 평론가님의 유튜브를 통한 크리틱이나 매주 V app 방송으로 여러 신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김윤하 평론가님과 박희아 기자님, 마찬가지로 힙합LE의 카드 뉴스나 유튜브 콘텐츠 등의 다양한 시도들은 비평계를 포함한 콘텐츠-미디어 시장에서 우리가 모색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비록 그 시도들이 지금까지의 모든 과제를 해결하지는 못할지라도, 한 줌 모래 같은 권위나 어쩔 수 없는 생계의 문제에도 어쨌든 우리는 대중 음악과 쓰여졌고 쓰여질 글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느슨한 연대를 확인하며 어딘가에서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내가 '우리'로서 고민한 것과, 다른 비평가분들이 가진 고민을 나름대로 그대로 옮여보려 노력한 내용이다. 그리고 이후로 기술할 나의 완전히 독자적인 생각은 이렇다.


3.

일단 나의 스테이터스를 나열해보자. 음악 전문 웹진이나 이름난 미디어 조직에 속해있지 않고, 블로그를 통해 근근히 앨범에 대한 리뷰나 추천 플레이리스트 정도를 올리다가 우연히 종합 예술 웹진의 필자가 되어 오늘(2018년 3월 26일)까지 628일 정도를 활동한 것 정도를 들 수 있다. 웨이브와 아이돌로지, 이즘, 아이즈 등의 웹진에 올라오는 텍스트들을 읽기는 하지만 다른 평론가나 칼럼니스트들과의 교류는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텍스트를 쓴 이들과 나 사이에서 어떠한 동류 의식이나 특정한 공감대를 형성한 경험은 없었다. 곰곰히 기억한다면 몇 번인가는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휘발된 감상이나 생각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비평가로서의 연대와 연결을 느낀 적이 적어도 이 행사의 이전까지는 없었다고 말 할 것이다. 극단적이리만큼 개인주의적인 나의 성향도 이러한 현상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스스로를 비평가로 규정했는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직업 사회의 기준에서 비평가에 속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그러한 자기 인식을 가져온 것 자체는 사실이다. 생업으로서의 비평 행위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때로 이런 자기 인식에 강한 회의를 가져오기는 하지만, 비평 행위를 하는 사람을 비평가라는 단어 외에 딱히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 앞에 '직업', '아마추어', 혹은 '유사', '사이비' 등 부가적인 의미를 가지는 표현을 붙일 수는 있겠지만 보편적인 사회적 의미에서의 비평 행위를 연속적·반복적·주체적으로 하는 사람을 비평가라고 부르지 못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향해서든 타인을 향해서든. 나는 기본적으로 본질주의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가시적이고 관측 가능한 대상 안에서 능력이 닿는 한 특정할 수 있는 요소들과 그것들이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것을 선호한다.

어쨌든 이 지론대로라면 오늘날만큼 비평가가 범람하는 시대는 이전까지 없었던 셈이다. 블로그나 SNS, 최근에는 유튜브를 통해 콘텐츠의 리뷰나 후기를 작성하거나 나름대로의 해석을 붙이는 사람들을 찾기는 너무나 쉽다. 그들이 스스로를, 혹은 타인이 그들을 비평가라고 칭하든 칭하지 않든 연속적·반복적·주체적으로 비평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고 또 증가하고 있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비록 그들 중 다수가 전통적인 구조와 조건을 만족하거나 주목 할 만한 메세지가 담긴 비평-텍스트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아주 최근까지도 나 역시 그러한 부류에 완전히 속해있었고, 현재는 그들과 '비평씬'으로 여겨지는 영역 사이에 아주 불편하게 발을 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쓰는 글들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 객관성과 권위, 설득력에 대해 쉽게 지적받고 시험받고 때로는 공격받기도 한다. 그리고 아마 나와 사정이 비슷하거나 혹은 그래도 몇 개의 타이틀과 일감을 가지고 있을 연차의 평론가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완성도와는 관계 없이 단순한 감상이나 리뷰, 해석, 비평 행위가 넘쳐나지만 비평적 성격을 띈 모든 행위와 그 결과물 자체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잣대가 부재한 시대와 장소에 있기 때문이다.

전대한 비평가님은 [취향입니다. 담론해주시죠.] 프로그램에서 지금의 평단을 폐허, 그리고 폐허 위의 폐허라고 표현하셨지만 나는 차라리 프로테스탄트들이 도달한 신대륙 혹은 조선인 이주자들이 목격한 만주쯤에 가깝다고 느끼고 있다.


4.

 잠시 국내 대중 음악의 역사를 이야기해보자. 짧고, 고유한 장르적 유산도 없었기 때문에 팝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곡들과 스타일을 참고하고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키치하고 탈-장르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 띄게 되었다. 그것이 "K-POP"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불리며 이를 변용하고 재생산하는 작업이 주목받은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어쨌든 한국의, 그리고 해외의 리스너들이 국내 대중 음악에서 다른 나라의 대중 음악 씬과는 다른 어떠한 전형성과 특정 가능한 공통점을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것은 불과 최근 10년, 넓게 잡아야 2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사실 국내 문화·예술계가 전반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겪었고 또 겪고 있다. 그리고 조잡하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과정을 비평계 혹은 평단이라고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폐허, 혹은 개척지로 유입된 사람들이 아주 하찮고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한 줄이라도 쓰기를 원한다. 그것이 비평이라고 규정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지면을 통해서든, 웹진을 통해서든, 블로그를 통해서든, 유튜브, SNS, 하다 못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커뮤니티에 남긴 댓글의 형태로든.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글들이 발견되고, 전달되고, 아카이빙되고, 동조받고, 공격받고, 옹호받고, 깎아져 내리기를 원한다. 필요 이상으로 의미가 부여되고, 비웃음 당하고, 그럼에도 다시 누군가에 의해 쉽게 쓰여지는 이 엉망진창인 과정이 국내 대중 음악 비평계라고 불리는 곳의 척박함과는 관계 없이 오히려 척박하기에 더욱 가시적으로 비평가들에게, 아티스트들에게, 음악에 관심을 가진 리스너들과 팬들에게,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기를 원한다. 비평의 생존을, 비평가로 스스로를 규정한 사람들의 생존을, 비평 행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서.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도달한 결과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될 지라도. 누군가가 이 곳을 "폐허"라고 부를 수 없는 전혀 다른 성격의 곳이 될 때까지. 그런 후에야 우리는 한국 대중음악 비평계와 비평 행위를 하는 스스로에 대해 '비평가: 비평 행위를 연속적·반복적·주체적으로 행하는 사람' 이상의 뜻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디아티스트매거진]에서 아이돌 이야기를 합니다. 트위터 계정 : @loveless0315 @2nd_Lirio

리리오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