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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걸 그룹을 교복에 가두는가

가장 공공연하지만 가장 은밀한 욕망

※ 2월 16일, [디아티스트매거진]에 개제한 칼럼입니다.


레드벨벳 'Bad Boy' 뮤직 비디오 중. ⓒSM엔터테인먼트
레드벨벳 'Bad Boy' 뮤직 비디오 중. ⓒSM엔터테인먼트

개인적으로 지난 해 레드벨벳의 ‘피카부’를 듣고 리뷰를 쓴 것이 좋은 경험으로 남았기 때문에, 레드벨벳의 리패키지 앨범이 발표 되었을 때에도 역시 그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의 리뷰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와는 달리 앨범이 발표되고 뮤직 비디오를 보며 한 동안 이것으로 긍정적인 글을 쓸 수 있을지, 그런 글을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한 동안 생각을 정리해야 했지만. 물론 [The Perfect Red Velvet]은 준수한 웰메이드 앨범이다. [Bad Boy]같이 깔끔하고 키치한 R&B 트랙을 걸 그룹의 앨범에서 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앨범의 완성도를 마냥 예찬할 수 없었던 이유는 뮤직 비디오와 무대에서 멤버들이 입은 의상 때문이다.

타이틀 곡 [Bad Boy]의 뮤직 비디오와 무대에서 멤버들은 짧고 타이트한 교복과 망사 스타킹을 매치한 스타일링을 하고 있다. 이런 의상이 흔치 않은 것은 아니다. 몇 소수의 그룹을 제외한다면 교복은 걸 그룹이 거의 필수적으로 거쳐가는 이미지 컨셉이다. 기획사들이 교복을 선택하는 이유 역시도 명쾌하다. 교복이 ‘소녀’ 이미지를 상징하는 가장 시각적인 아이템이고, 소녀 이미지를 상품화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 기획사의 대표는 3년 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신인 걸 그룹이 섹시한 컨셉을 소화하기에는 아직 미숙한 점이 많기 때문에 풋풋함과 신선함을 표현하고자 교복을 선호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복은 이제 걸 그룹과 거의 불가분의 관계라도 해도 좋을 만큼 아이돌 시장에서 널리 그리고 적극적으로 쓰이는 아이템이 되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한다면 왜 새삼 그것이 리뷰를 쓰지 못할 이유가 되는지에 대해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기에 몇 가지 질문들을 덧붙이면 문제는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들이 걸 그룹에게서 이러한 이미지를 원하는가? 소녀에게 따라 붙는 풋풋함과 신선함은 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왜 교복을 짧고 타이트하게 조이고 몸매를 노출시키도록 하는가? 그것이 소녀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어떤 사람들의 기분을 불편하고, 거북하고, 긴장감 들도록 만들고, [Bad Boy]의 의상을 그저 ‘컨셉’으로 여기고 덮어둘 수 없도록 만든다. 이것은 결국 오랫동안 국내 대중 음악계를 포함해 문화계 전반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도착적인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JYP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헤아리자면 수도 없이 많다. 레드벨벳의 [Bad Boy]를 포함해 원더걸스의 [Irony], 애프터스쿨의 [Ah],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 AOA의 [심쿵해], 트와이스의 [OOH-AHH하게]까지 10년이 넘도록 교복이 함의하는 소녀의 순수함과 성애적 환상의 기묘한 조합은 계속 이어져왔다. 90년대의 걸 그룹들이 (대표적으로 S.E.S) 성애적인 편집을 거치지 않은 형태의 교복을 입고 청소년과 청소년 문화의 이미지를 내세우다가 점진적으로 당당하고 세련된 성인 여성의 이미지를 수행하던 것과는 다르다. 지금의 걸 그룹을 통해 표현되는 여성상은 소녀와 성인 여성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 머물러있다.

여기에서 첫 번째 질문이 제시된다. “누가 이러한 이미지를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2000년대 중후반, 아이돌 그룹이 ‘머글’로 불려지기도 하는 대중들에게 범 국민적 관심과 인기를 획득하고 소위 ‘삼촌 팬’으로 일컬어지는 성인 남성 팬들이 아이돌 시장에 유입되기 시작한 시기와 걸 그룹이 이전 세대의 그룹보다 성애적 이미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서로 맞물린다. 이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하기 위해 기획사들은 걸 그룹의 이미지에 변화를 주 물론 걸 그룹들은 여전히 순수한 사랑과 연애를 꿈꾸는 소녀인 채로 남아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모습으로부터 성애적 매력이 느껴지도록 변모했다. 좁게는 삼촌 팬, 넓게는 그들의 욕망에 공감하는 제작자들과 대중이라고 뭉뚱그려져 표현되곤 하는 불특정 다수의 남성 집단이 그 ‘누구’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걸 그룹 혹은 소녀에게 순수할 것과 동시에 성애적인 분위기를 내재할 것을 요구하고 욕망하는가? (비록 그들이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한 러시아 작가의 소설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 (Lolita)>에 기원을 두고 있는 롤리타 콤플렉스(Lolita Complext)는 어린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적 호기심과 흥분을 가지는 현상 –혹은 증상- 을 일컫는 말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녀 롤리타는 순수하고 밝은 소녀이지만 화자인 중년 남성은 롤리타에게서 섹시한 분위기를 읽어낸다.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 작품과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개념은 일본에서 ‘로리콘’으로 축약되어 롤리타 콤플렉스를 가진 남성들이나 그러한 성격을 띈 포르노를 의미하게 되었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통해 물리적인 포르노그라피로 변모했다.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성 사회는 소녀를 성적 순결함의 상징으로 두고 숭배하며 여성의 성적 순결을 강조하면서도 성적으로 매력적일 것과 남성들의 욕망을 충족할 것을 동시에 요구해왔다. 그러나 일본의 서브 컬쳐 업계와 포르노 시장을 거치며 소녀의 이미지는 적극적으로 시각 포르노화(化)되어 가장 대표적인 시각적 상징물인 교복이 적극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포르노그라피적 키워드는 일본의 대중 문화에서도 나타났고, 일본의 걸 그룹 시장 역시 오랫동안 교복을 그들의 순수함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울림엔터테인먼트
ⓒ울림엔터테인먼트

일본의 아이돌 시장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도 이러한 경향성은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현대의 걸 그룹은 얼핏 당당하거나 털털하고 스포티하며 적극적인 이미지로 보이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남성을 거부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노출로 유혹 아닌 유혹을 하는 기묘한 역할을 수행할 것을 강요 받는다. 소위 ‘삼촌 팬’으로 일컬어지는 성인 남성 팬들은 청소년 여성 아이돌에 대한 열광이 섹슈얼한 욕망과는 관련이 없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그들이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한 이후로 청소년으로 구성된, 혹은 청소년이나 학생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채택한 걸 그룹이 성애적 판타지를 내포한 컨텐츠와 함께 나오기 시작했고 성애적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순수하고 어리며 귀엽고 수동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결과다. 

포르노그라피는 사람들의 성적 판타지, 깊숙하고 은밀한 욕망을 투영하는 결과물이다. 활발하고 순수하면서도 성애적인 매력을 띈, 교복을 입은 걸 그룹들은 ‘로리콘’들의 욕망을 -그것이 자각된 욕망이던 자각되지 않은 욕망이던- 투영하고 있고, 그들의 관음적 욕망은 걸 그룹 그 자체를 넘어 현실의 청소년 여성을 향하고 있다. 누군가는 교복 컨셉 하나로 너무 많은 비약을 하며 심각한 문제인 양 부풀리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할 것이다. 성적 판타지를 가지는 것과 그것을 물리적으로 충족하려 시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교복을 입은 걸 그룹들과 청소년 여성들이 남성들의 관음적 시선과 잠재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거나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에 존재하는 폭력을 뒤틀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재생산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과정의 재료로 걸 그룹을, 청소년을, 여성을 넣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가장 공공연하고 가장 은밀한 포르노그라피를 욕망하는 로리콘일 뿐이라는 것도.


http://www.thearti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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