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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올해의 K-POP (연말결산)


※ 12월 19일 [디아티스트매거진]에 개제한 칼럼입니다.


2017년은 유난히 많은 아티스트들이 거대한 유행과는 관계 없이 각자의 독자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만든 음악이 많이 발표되었다. 그런 만큼 어떤 앨범이나 곡이 가장 잘 만들어졌는지 그 순위를 매기는 것이 아닌, 한 해 동안 발표된 국내 메인스트림 음악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앨범과 싱글 여덟 장을 뽑았다.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NCT 127 <Cherry Bomb>

NCT 프로젝트는 현재 남성 아이돌 그룹 중 가장 실험적인 그룹이고, NCT 127은 그 중심에 있다. ‘Cherry Bomb’은 SMP에 가까웠던 ‘무한적아(Limitless)’의 정교하고 풍부한 규모의 프로덕션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더 재미있고 실험적인 사운드로 그 부품을 대체했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사운드 위에서 절묘하게 힘을 조절하는 마크의 랩과 은근하게 보여지는 섹슈얼 코드 뿐 아니라 레트로를 적극적으로 따르고 있는 인터넷 내부의 서브 컬쳐 트렌트를 연상시키는 도트 이미지, 팝 아트 캐릭터 등의 각 요소들은 마치 콜라주 작품과 같이 산발적이고 소모적이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띄고 있다. 국내의 어떤 주류 음악 앨범이나 해외의 메인스트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시도의 앨범이다.

아이유 '팔레트' 뮤직 비디오 중. ⓒ로엔엔터테인먼트
아이유 '팔레트' 뮤직 비디오 중. ⓒ로엔엔터테인먼트

아이유 <Palette>

팝 재즈, 발라드, 신스팝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이 아이유의 다채롭고 특징적인 보컬과 그의 감정과 생각이 담긴 가사로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작사의 영역에서 아이유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와 보편 정서를 서로 연결하는 것에 성공했다. 쉬운 것이 좋아졌고, 핫핑크보다 보라색이 더 좋고, 긴 머리보다 단발이 더 좋지만 커린 베일리 레이의 노래가 여전히 좋고 좋은 날 활동 시기의 자신을 “참 예쁘더라”고 추억하는 그의 개인적인 감상은 가수 아이유의 활동을 지켜봐 온 대중들의 시선과 서로 교차하며 가장 아이유스러운 것은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동시에 존재한다. 다양한 장르의 곡 역시 장르의 전통을 따르기보다 가사를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에 집중되어 차분하고 섬세하게 깔려있다. 이 앨범은 아이유의 지난 앨범들 중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지만 판타지스러운 사랑을 노래하던 아이유와,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고 곰과 여우 중 어느 쪽인지 맞춰보라던 아이유, 촌스러운 복고 음악을 부르던 아이유 전부를 한 팔레트에 담아냈다. 그리고 이 앨범으로 인해 아이유를 발라드 가수나 댄스 가수 혹은 아이돌로 정의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EXO <The War>

EXO의 음악에서 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온 정교한 프로덕션이 특히 빛을 발한 앨범이다. 실험적이고 섬세한 사운드가 촘촘히 쌓이고 그 위에 멤버들의 보컬이 화음을 쌓아 각 곡들의 규모는 어느 때보다 화려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다. 웅장하고 서사적인 멜로디의 ‘전야(The Eve)’, ‘Forever’ 같은 트랙과 실험적이고 날카로운 ‘Ko Ko Bop’, ‘다이아몬드(Diamond)’이 서로 번갈아 나오면서도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구성도 돋보인다. 2집 ‘EXODUS’에서 이미 한 번 서사적인 컨셉을 시도한 바 있지만 훨씬 더 잘 만들어진 속편을 본 것 같은 느낌.

선미 '가시나' 뮤직 비디오 중. ⓒ메이크어스엔터테인먼트
선미 '가시나' 뮤직 비디오 중. ⓒ메이크어스엔터테인먼트

선미 <가시나>

2000년대에 비해 주목 할 만한 활동을 보인 여성 댄스 아티스트가 극히 줄어든 시점에서 선미는 박진영 프로듀서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섹시 가수에서 탈피하고 고유한 이미지의 아티스트가 되었다.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표정과 안무를 보여주던 선미는 가시나에서 ‘예쁜 나’를 강조하며 웃어 보이다가도 차가운 표정으로 일관하고 “날 두고 떠나가시나”라며 말하면서도 텅 빈 방 안에서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들을 보이기도 한다. 카메라 너머의 대중들을 유혹하는 여성 댄스 가수의 전형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모호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선미는 스스로에게도 주류 음악계에도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한다.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이달의 소녀 오드아이써클 <Mix & Match>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가 흥미로운 이유는, 각 멤버들의 솔로 곡을 발표하다 공개된 멤버 몇 명을 모아 유닛을 결성하고 마지막에는 전원이 한 팀으로 데뷔를 한다는 독특한 프로모션 방식보다도 K-POP 씬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르의 곡들로 K-POP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이지한 드림 팝 장르 ‘LOONATIC’, 앰비언트 스타일의 'ADD' 등의 트랙들은 그 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장르의 곡들을 K-POP의 감성에 맞도록 절묘하게 만들어졌다. 흔하게 들을 수 없는 장르의 곡들을 소화하는 멤버들의 역량도 돋보이는 앨범.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태민 <MOVE>

앞서 발매한 두 개의 앨범에서 보여준 음악적 정체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태민이 가진 젠더리스적인 분위기를 안무와 아트워크를 통해 비주얼적으로 풀어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앨범이 되었다. 장르적 문법을 따르기보다 다양한 장르에 그루비한 리듬을 붙여 댄스 곡으로 편곡하고, 섹슈얼한 코드에서 정형화된 남성성을 지우고 태민 고유의 몸을 강조한 표현주의적인 작업임에도 정교하고 섬세한 프로덕션과 안무가 돋보인다. 직관적이면서도 동시에 구조적으로 훌륭한 앨범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레드벨벳 <Perfect Velvet>

여름을 구성하는 다양한 키워드를 직관적으로 풀어낸 ‘빨간 맛(Red Flavor)’을 발표한 지 네 달 만에 레드벨벳은, 이전까지 R&B나 발라드 장르로 존재하던 벨벳 컨셉을 완전히 새롭고 복잡하게 구성한 앨범으로 재해석했다. ‘빨간 맛’이 수록된 ‘The Red Summer’로 활발하고 상큼한 걸 그룹로서의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다가 ‘Perfect Velvet’으로 벨벳이라는 부드럽고 따뜻한, 혹은 ‘여성적인’ 소재를 기묘하게 뒤틀었다. 팝 아트적이고 어딘가 그로테스크한 앨범 비주얼과 장르의 전통적인 문법을 따르고 있는 탄탄한 구성의 수록곡들은 그 동안 걸 그룹의 음악에서 찾아보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요소들을 따라가는 듯 하면서도 걸 그룹의 전형성에서 벗어나기도 하는 흥미로운 앨범.

ⓒDSP미디어
ⓒDSP미디어

KARD <Hola Hola>

올해 가장 트렌디한 장르는 트로피컬 하우스였고, 이 장르가 중심인 앨범이 많이 발매되었지만 다른 그룹들의 것보다 확연히 차별되는 것은 KARD의 앨범이다. 비슷한 느낌의 곡이라도 혼성 그룹이기 때문에 다른 곡들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2000년대의 혼성 그룹들이 그래왔듯 여성 멤버들이 멜로디를 이끌어가고 남성 멤버들이 낮은 음의 파트와 랩을 담당하고 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다른 어떤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의 곡보다도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익숙한 향수를 준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찾기 힘든 구성의 그룹인 만큼, 혼성 그룹은 그 구성만으로도 장르를 차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했다.


[디아티스트매거진]에서 아이돌 이야기를 합니다. 트위터 계정 : @loveless0315 @2nd_Li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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