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미 수 차례에 걸쳐 영상화가 된 문학 작품들을 2010년대 들어 다시 영화화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가 된 이 시점에서 [위대한 개츠비(2013)], [맥베스(2015)] 같은 작품들에 대한 제 생각은, 미장센과 카메라 워크, 음악 등 디테일적인 요소들은 이전의 것들보다 훨씬 세련되고 섬세헤졌지만 원전 그대로의 플롯을 따라가느라 생략되는 부분이 많아 오히려 아쉽단 거였어요. 사실 긴 분량의 문학 작품들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에는 늘 이런 아쉬움이 따라 붙기 마련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영화라는 비교적 한정된 시간 안에서 모든 것을 보여야 하는 경우에는 시리즈의 그것보다 스토리와 작품 내 여러가지 묘사를 더 많이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크게 남기 마련이죠.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예외는 아닙니다. 등장인물 몇 명의 설정이 바뀐 것 외에는 원작의 스토리를 최대한 따라가려 노력은 하고 있어요. 소품과 미술, 미장센이 작품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원작의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어딘가 부족해보입니다. 첫 번째로는 중반부 부터의 연출 문제가 있어요. 이 작품을 포함한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각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사연과 의도를 부분적으로 가리면서 증언을 하거나, 각자가 일상적이지만 수상한 행동을 하며 충격적인 진상이 드러나기 전까지 정적인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긴장감이, 그것이 고조되기 시작해야 할 '붉은 기모노' 씬부터 꼬이기 시작해요. 오히려 본격적인 수사물처럼 의심되는 용의자를 차례로 조명하며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다가 나중에야 오해가 풀리면 다시 누군가를 지목하는 범인 맞추기 식의 진행이 이어집니다. 총 세 명의 인물이 포와로에 의해 적극적으로 의심받거나 추궁받는데, 후반의 둘을 비추는 방식은 너무 오버스러웠어요. 우리가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을 읽을 때 기대하는 것들은 그런게 아니죠.

후반부에서 결말까지의 진행에서도 플롯 진행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영국 포와로 시리즈 12시즌에서 방영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에피소드는, 후반부 20분 동안 포와로가 범인들을 심판하기를 망설이고 동정하는 대신 그들의 위선과 절대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원칙에 대해 분노하고 고뇌하는 씬에 굉장히 많은 힘을 쏟아냈습니다. 그 덕분에 포와로의 여유로운 초인 같으면서도 완벽함을 중시하는 면이 서로 교차하거나 악인으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들과 잔혹하고 계획적인 집단 살인범들이 서로 겹쳐지며 작품은 훨씬 입체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요. 이 작품에서 포와로는 완벽주의적이지만 자비로운 성품으로, 범인들은 죽은 사람에 의해 고통받은 피해자이자 그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동정할만한 인물들로 비교적 평면적인 성격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물론 이게 원작에서 그들을 조명하는 시선이긴 해요. 고전 문학 작품을 현대적이고 입체적으로 각색한다고 모두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적어도 스토리의 결말과 인물들의 감정에 대해 관객들이 그들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입할 시간과 장치들은 마련해놨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한 시간 50여분 남짓의 시간이 이 스토리를 섬세하게 풀어내기에는 너무 짧고요.

결국 고전 작품을 지금의 시점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현대의 관객들이 진지하게 몰입해 볼 만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작을 접한 적이 없는 관객들에게는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을 접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고전을 리바이벌하는 것 정도는 아마추어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 미셸 파이퍼를 포함한 여성 배우들의 연기는 지금까지 영상화된 오리엔트 특급 살인 작품들 중에서도 훌륭했어요. 각 인물들의 표정과 대사를 좀 더 집중적으로 잡았더라면 더 생생한 씬이 많이 나왔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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