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1일 [디아티스트매거진]에 개제한 칼럼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
ⓒSM엔터테인먼트

EXO에게 고유의 세계관과 스토리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조금 덜 알려진 사실은, 앨범마다 세계관을 표현해내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신화적인 분위기의 스토리 텔링을 보여주는가 하면 하이스쿨 드라마가 되기도 하고, 아트필름의 형태를 빌리기도 한다. 그리고 <The War>의 리패키지 앨범인 <POWER>에서 그들의 세계관은 아메리칸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되었다. <KOKOBOP>에서 레게팝의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장르적인 실험, 그리고 여름과 트로피컬의 이미지 컨셉 안에서 초능력 컨셉을 이어가는 것까지 시도하는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과는 다른 방향성이다. 이로 인해 <The War>은 트렌디하고 실험적인 앨범이기도, 마치 팬들의 2차 창작과 같이 소모적이고 변용적이기도 한 독특한 위치의 앨범이 되었다.

<POWER>은 EDM 장르의 곡이지만 동시에 80년대 게임의 음악을 변용하거나 응용한 칩튠의 스타일을 따르기도 한다. 그런 만큼 뮤직 비디오와 이미지들이 고전 SF물 컨셉과 아메리칸 코믹스, 미국TV 애니메이션 풍으로 그려진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SM엔터테인먼트의 2017년 커리어에는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는데, NCT 127의 <Cherry Bomb>, SM 스테이션을 통해 선보인 Charli Taft의 <Love Like You>에 이어 <POWER>의 뮤직 비디오 역시 북미 서브 컬쳐 풍의 스타일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필터를 통해 파스텔이나 형광톤으로 보정된 색들과 고전 게임을 연상시키는 도트 그래픽, 90년대 PC의 조잡한 CG같은 이미지들은 텀블러나 핀터레스트와 같은 SNS에서 Geek(게임이나 애니메니션, PC 등에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은어) 성향의 유저들에 의해 변용되거나 2차 창작되어 양산되는 이미지들과 매우 유사한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다.

ⓒSM TOWN 공식 유튜브 채널
ⓒSM TOWN 공식 유튜브 채널

<POWER>의 비주얼 컨셉 역시 SNS에서 양산되는 북미 서브 컬쳐의 소비 방식과 같은 스펙트럼 위에 놓여 있다. 앞서 언급된 곡들의 비디오에 비해 비교적 명확한 스토리와 장르를 가지고 있지만 복고적인 전대물과 애니메이션, 조잡한 CG와 뜬금없이 나오는 고양이(현대의 인터넷 문화에서 고양이가 얼마나 특수하고 상징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인터넷 안에서 쉽게 제작되고 소비되는 이미지들과 상당히 닮아있다. 최근의 K-POP 산업이 북미권에서 서브 컬쳐로 통한다는 것을 자각이라도 한 것인지, 스스로 서브 컬쳐임을 자처하는 듯 그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접목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사실 한국의 아이돌 아티스트들이 서브 컬쳐적인 이미지를 취하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일은 아니다. 태민의 <さよならひとり>, 빅스의 <도원경>, NCT 텐의 <몽중몽> 같은 곡들은 동아시아의 다양한 요소를 합쳐놓은 오리엔탈 판타지적인 사운드와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쓰고 있고, 이 이미지들은 적당히 동양적으로 보이는 것에 열광하는 ‘긱(Geek)’들이 만들거나 소비하는 이미지들과 매우 닮아 있다. 그리고 그들이 북미에서 K-POP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POWER>을 비롯한 일련의 곡들의 컨셉은 단순히 다양한 실험의 과정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자신들을 소비하는 집단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고, 그들이 욕망하는 것이나 기대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삶과 소비에 있어 익숙한 것을 모두 보여주며 대체 불가능한 장르로서 자리잡으려는 시도에 가깝다.

<KOKOBOP>과 <POWER> 모두 EXO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지만 각각의 방향성은 다르다. <KOKOBOP>이 프로덕션과 멤버들 역량에 대한 실험적인 노선이었다면 <POWER>은 팬들, 특히 북미의 팬들과 새로운 시장을 향한 ‘서비스’에 가깝다. EXO, 그리고 K-POP은 초국적 트렌드의 대중 문화와 서브 컬쳐 사이 그 어딘가에 섬세하게 위치하고 있다. 이 독특한 위치에서 비롯된 영향력과 존재감은 EXO와 K-POP이 앞으로 어떤 문화 현상을 가져오게 될지 기대를 가질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 흥미로운 장르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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